전쟁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도 일상생활 속에 평범한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나타난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오래전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때는 한국같이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눈도 내리는 12월 겨울철이었다.

유치원 학생이던 어린 아들은 하나님 나라에 여행한다는 말을 듣고 짐 싸고 준비할 때부터 기대에 차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

여행지인 이스라엘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는 성서의 무대가 이스라엘이니만큼 별생각 없이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했는데 생각 깊은 아들이 하나님의 알리바이를 물어와서 아버지를 대답하기 궁색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벤 구리온 공항에 내리면 입국장에는 커다란 조각품 하나가 있었다. 1972년 5월 일본 적군파가 벌인 벤 구리온 공항 총기 난사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 조각이다.

같은 해 9월 뭔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습격사건과 더불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테러였다. 맷돌을 세워 놓은 듯한 석제 원반의 중심에 꽂힌 막대가 마치 그 일을 언제까지나 기억한다는 듯이 시계바늘처럼 끝없이 돌고 있는 상징적인 조형물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1948년 건국 이후로 계속해 팔레스타인과의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었다.

팔레스타인 측에서도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아랍 정치지도자 간의 외교적 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양측 모두에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들이 나왔다.

그러나 죽음과 파괴의 공포 속에서도 일상생활 속에 평범한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서나 나타난다.

5월 24일자 CNN 뉴스는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를 방문 취재한 결과물을 방영했다.

열 몇 살 정도 소녀가 며칠 전 영양실조로 사망한 동생의 마지막 시간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중동전문 학자들은 중동문제는 인간성의 시금석이라고 말한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가 중첩되는 중에 인간성이 소거되는 비인도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아동들에게 자행되는 전쟁 범죄를 그린 '거북이는 날 수 있다(The Turtles Can Fly)'와 가족의 생계를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혹한의 설산(雪山)을 넘어 국경 밀수 길에 나서는 어린아이들의 참상을 보여주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A Time for Drunken Horses)'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되었다.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세계인들이 난민(難民)문제에 주목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The Wind Will Carry Us)' 같은 작품에서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삶에 대한 종교적 성찰을 통한 이같은 문제 해결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