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교외의 야드 바셈 전경. 1953년 개관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문객들이 찾는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야드 바셈(Yad Vashem : 히브리어로 '기억과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살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을 반영한듯 간략하게 디자인된 건축물은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잔인함을 사진과 유물을 통해 전하고 있다.
야드 바셈 입구를 들어서면 어두운 색조의 홀 중앙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벽에는 히브리어와 아랍어 그리고 영어로 새겨진 석재 현판이 보인다. '망각 속에 파멸이 있고 기억 속에 구원이 있다'는 의미다.
전쟁이 끝난 후에 유대인들이 독일 민족에게 했다는 “당신들을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글이다.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은 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여러 비인도적인 행위를 찍은 사진과 유품들을 보게 된다.
인체 실험의 도구가 되어 죽어간 사람들의 실험 사진, 가스실 앞에서 벌거벗긴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불태우기 전 시체에서 수거한 금니와 안경, 머리털과 신발 더미 그리고 화장장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을 보게 된다.
마치 당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던 일본군대가 중국에서 자행한 인체 실험과 같은 잔인한 행위와 결과물들이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이반호로드의 유대인 모자살해(Germany's Einsatzgruppen murdering Jewish civilians in Ivanhorod, Ukraine, 1942)'로 불리는 사진이 유명하다.
어느 유대인 여인의 뒷머리를 겨누고 소총을 발사하는 나치 병사 앞에서 어린 아들을 보호하려는 듯 가슴에 껴안고 돌아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제 막 총탄이 발사된 듯 총구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바로 그 앞에서 아이를 안고 돌아서 있는 어머니의 움츠린 모습은 선연하게 기억에 남는다.
야드 바셈에는 당시 희생된 아동들을 기억하는 별도공간이 있다.
관람객들이 입장하면 칠흑 같이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게 된다. 올려다보면 천장에는 수많은 작은 등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고 벽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무수하게 빼곡히 적혀져 있다.
그리고 걸어가는 동안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계속 들린다. 수용소에서 자식을 잃은 어느 아버지가 기증한 기금으로 만든 특별관이라고 한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으로 불리는 유럽에서의 유대민족에 대한 박해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그리고 이같은 박해는 현대에 들어 유대민족에 의해 아랍민족에게 유사한 형태로 투사되고 있다는 국제정치학자들의 해석처럼 중동문제는 다중적이고 중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