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매년 11월, 대한민국은 한 가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숨을 죽입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입니다.
수능은 1993년까지 시행되던 학력고사 이후 94학번부터 도입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지만, 이제는 제 자녀가 수능을 치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제 막내가 수능시험을 봤고, 그 준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수시에 지원했지만 몇몇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요구했기에, 1학기가 끝난 뒤 약 5개월 동안 수능 준비에 매진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꾸준히 공부해왔지만 마지막 5개월은 그야말로 인생의 한 챕터를 바꾸는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저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만큼 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시험 당일, 그동안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로서 절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한 달 전쯤, 한 대학교에서 수시 면접이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면접장으로 향하면서 긴장과 걱정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답답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들은 “수능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내가 경험했던 것이 어떤 식으로든 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지난 몇 달간의 시간들이 좋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서 저는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수능이 끝난 후에는 매년 반복되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많은 학생이 수능 점수에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부모 역시 자녀의 미래를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때로는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 원하는 대학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면 그 외의 것들은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삶이 수능이나 대학에만 국한될 수 있을까요? 삶은 수능이나 대학 그 이상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훨씬 더 넓고 깊으며,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고사성어 ‘새옹지마’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예측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행이라 여겼던 일이 오히려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반대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불행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순간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몇 해 전, 저는 류시화 시인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인생에는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 역시 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인생에도 좋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고, 힘들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저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힘든 시간마저도 내 삶의 일부였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도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험 결과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기쁨이 크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삶은 계속됩니다. 오히려 실패와 좌절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길고, 수능은 그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인생을 새옹지마라 생각하며 순간의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자신을 믿는 것이 진정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아들이 수능을 준비하며 보여준 태도, 즉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다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결과만을 중시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가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줍니다.
수능이라는 큰 고비를 넘은 모든 학생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인생의 도전에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은 수능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최고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모두 소중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이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도전을 마주합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경험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산을 넘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우리의 삶은 수능 그 이상이며,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