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모든 업무는 상하좌우로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직장인에게 있어서 보고하거나 보고받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구두보고와 서면보고가 있다. 직장인도 말하기와 듣기, 그리고 글쓰기와 읽기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장기간 보존되는 서면보고서는 중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더구나 시간을 다투는 급한 경우에는 정확하고도 신속히 작성해 보고하는 것이 요구된다.
보고서는 5W 1H로 불리는 육하원칙(六何原則)이 기본이다. 그리고 빙산처럼 물 위에 보이는 사실(Fact)과 수면 아래 잠겨있는 진실(Truth)을 구별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표면적인 모습만을 알리는 단순한 전달자 역할로는 부족하다.
자신만의 관점이 있으면 더욱 유용한 보고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같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어도 소감이 같지 않고 함께 여행을 다녀와도 사람마다 다른 여행기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외교사 속에 등장하는 보고서 중에는 세계사적인 전쟁과 평화 또는 국가의 운명을 가른 중대한 것들도 있다.
이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의 효시가 된 ‘롱 텔레그램(Long Telegram)‘이 유명하다.
구소련 당시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의 케난 서기관은 장문의 보고서로 강력한 대소련 봉쇄전략이 필요함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작성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역사에 남는 보고서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대한제국 초기 울릉군수 심흥택이 작성해 보고한 독도 보고서를 들 수 있다.
1906년 4월 울릉도를 관할하는 울도군수 심흥택 (鬱島郡守 沈興澤)은 사전 통지도 없이 갑자기 울릉도에 상륙한 일본 관리가 이제부터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고 하 는 발언을 듣는다.
심흥택 군수는 이러한 내용을 다음 날 바로 강원도관찰사에게 보고했다. 이것은 강원도관찰사 서리 춘천군수 이명래가 1906년 4월 29일자로 의정부 참정 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호외’에 수록되어 있다.
심흥택 군수는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하면서 동시에 중앙 정부에도 동일한 내용의 보고서를 직접 내부(內部)에 발송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중 조치를 한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06년 5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 잡보(雜報) 기사에도 게재되어 중요한 역사기록으로 남았다.
국토가 침탈당하는 일선 현장에서 정부 관리 심흥택은 역사적인 보고서를 써 보냈다.
정부 관리와 언론이 이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면 독도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대응 시기를 놓치고 중대한 사료를 잃게 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