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추석은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불립니다.
한가위라는 이름에는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음력 팔월 보름, 가을 추수철이 끝난 시점에 뜨는 한가운데의 둥근 달을 보며 조상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족과 함께 풍요를 나누는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단순한 휴일을 넘어, 감사와 나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추석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풍요롭고 행복한 시기로 여겨졌습니다.
벼가 익어가고 과일과 곡식이 풍성해지는 가을, 사람들은 추수를 마치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음식을 장만해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지금은 1년 내내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라서 추석의 특별함이 다소 옅어졌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추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명절입니다.
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바로 송편입니다. 송편은 햅쌀로 빚은 반달 모양의 떡 인데, 그 안에 콩, 깨, 밤 등을 넣어 맛을 더합니다.
송편을 빚을 때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죠.
이처럼 송편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 간의 유대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은 조금 독특한 명절 풍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9남매 중 여덟 번 째셨고, 어머니는 6남매 중 셋 째셨는데요, 장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절이 되면 저희 집에 사람들이 오기보다는 우리가 친척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과일 박스를 준비해 친척 집을 몇 집씩 돌며 인사를 드리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받은 명절 음식들이 쌓였고, 며칠 동안 그 음식들로 식사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시골에서 친척들이 모이면 정말 시끌벅적했습니다. 저희 고향은 집성촌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다 친척이었거든요.
친척 어르신들께 “저 OOO이 아들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면, “아이고, 이렇게 많이 컸네”,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같은 이야기를 듣는게 참 익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순간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리고 저와 사촌들이 결혼을 하면서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북적이는 명절 풍경보다는 소소하게 가족끼리 보내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첫 명절, 아내는 저희 집의 명절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부모님 댁에서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서 먹었기 때문이었죠.
아내는 명절하면 전이나 송편 같은 전통 음식을 떠올렸는데, 회를 먹는 저희 집 명절 풍경이 낯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집은 오랫동안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먹으며 명절을 보냈답니다.
반면 아내 집은 아버지가 장손이셨기 때문에 명절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전, 나물, 송편 같은 음식을 잔뜩 준비하느라 정말 분주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처갓집은 명절이 되면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로 바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명절 문화를 접하면서 아내는 꽤 놀랐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명절을 한 번 보내고 나서는 어머니께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가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어하셨습니다. 몇 번 음식을 준비하시다가 힘드셨는지 명절 음식이라기보다는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해주시곤 했습니다.
그래도 명절이 되면 꼭 LA갈비만큼은 빠지지 않고 준비하셨고, 남은 갈비는 자식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요즘은 추석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올해 추석은 긴 연휴와 겹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동안 쉬는 가족들도 있었죠.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처럼 친척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친목을 다지는 추석보다는, 이제는 쉬는 날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석은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죠.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고, 기차표는 순식간에 매진되곤 합니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추석의 따뜻한 풍경 중 하나입니다.
추석은 단순히 음식을 먹고 쉬는 날이 아니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날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송편을 빚으며 나누었던 웃음, 성묘에서 느꼈던 조상님에 대한 감사,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했던 식사 한 끼까지, 추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도 이번 추석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 풍성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처럼 우리의 삶도 풍요롭고 따뜻한 날들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