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해가 갈수록 제가 좋아하는 가을은 점점 짧아집니다.
그래도 가을이 깊어질수록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은 선선해집니다. 이런 계절의 변화 속에서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봉이 익었는데 딸 사람이 없다며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대봉은 감의 한 품종으로, 특히 홍시로 먹으면 그 맛이 깊고 달콤합니다. 부모님 댁에 심어진 대봉나무에서 올해도 열매가 풍성하게 맺혔다는 소식에 저는 시간을 내어 부모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몇 해 전, 부모님께서는 작은 땅을 마련해 농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밭 주변에는 사과, 복숭아, 앵두, 대추, 단감, 그리고 대봉 등 다양한 과일나무를 몇 그루씩 심으셨습니다. 이 나무들은 계절마다 저마다의 열매를 맺으며 가족에게 작은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농사는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느 해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열매가 다 떨어져 버린 적도 있었고, 잘 열리던 대추나무가 어느 해부터인가 열매를 맺지 않아 결국 다른 과일나무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밭을 한 바퀴 돌며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과일나무의 열매가 어떻게 맺혔는지 살펴봅니다. 잘 익은 것들은 따서 바구니에 담아오기도 하는데, 이런 일상은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대봉은 특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감입니다. 대봉철이 되면 아버지는 잘 아는 분에게 연락해 대봉을 받아 드셨습니다. 그러다가 직접 대봉나무에서 따서 드시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딱딱한 감보다 홍시를 더 좋아하셨는데, 대봉을 보면 저절로 아버지가 떠오를 정도로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과일입니다.
올해는 대봉나무 세 그루에 열매가 유난히 많이 열렸습니다. 낮게 열린 대봉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사다리를 타고 따야 했습니다.
대봉나무 옆에는 농수로가 있어서 사다리를 대지 못한 곳의 대봉은 결국 새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나누어 가지는 풍경, 이것도 시골 농사의 한 모습입니다.
마지막 대봉까지 따고 돌아오는 길에 미처 보지 못해 남겨둔 대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다리를 설치하고 올라가는 도중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사다리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저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대봉나무 가지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가지가 제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리 높지 않아 다치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놀랐습니다.
옆에 계셨던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며 괜찮으냐고 물으셨고, 감나무는 약해서 잘 부러지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시골에서는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가지가 부러져 다친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향에도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었고, 감나무에 올라가다가 떨어져 다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낮은 곳에 열린 감만 따고, 높이 있는 감은 새들을 위해 남겨두곤 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감나무는 우리나라 시골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집안의 울타리나 마을 어귀에 감나무를 심었고, 가을이면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 감은 귀한 간식이자 겨울철 식량을 보충하는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특히 대봉은 홍시로 만들어 먹으면 그 맛이 각별합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놀고, 어른들은 감을 따는 풍경은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모습입니다.
감은 또 잘 말려 곶감을 만들어 겨울철 영양 보충에 사용했습니다. 곶감은 설날이나 명절에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특별한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감은 약재로도 쓰였습니다. 감잎은 차로 우려 마시기도 했고, 감은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감은 우리 민족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나무는 오래 살아남는 나무로, 한 집안의 역사를 함께합니다. 조부모님이 심은 감나무가 자라서 부모님 대에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자식들이 따먹습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가족이 모여 감을 따고 홍시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풍경은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합니다. 감은 단순한 과일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대봉은 감 중에서도 크기가 크고 맛이 진합니다. 대봉은 단단할 때는 떫지만, 홍시로 익으면 부드럽고 달콤해집니다. 이 변화는 마치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칠고 떫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드럽고 달콤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대봉을 좋아하시는 이유도 그 깊은 맛 때문일 것입니다.
올해 대봉과 단감은 유난히 풍성했습니다. 상품성이 좋은 것은 포장해 로컬푸드에 납품하고, 상품성이 덜한 것은 친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대봉과 단감을 한 상자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깊어지는 가을과 높은 하늘, 시원한 바람, 그리고 오랜만의 노동까지 더해져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나무와 대봉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가족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농촌의 풍경, 가족이 함께 모여 감을 따고 홍시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모습은 공동체의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대봉은 단단할 때는 떫지만, 홍시로 익으면 부드럽고 달콤해집니다. 이 변화는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올해 가을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절이 바뀌면 대봉나무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