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린 시절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자란 이들이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굳이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이미지=생성형 AI]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린 시절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자란 이들이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굳이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이미지=생성형 AI]

 1박 2일로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대학원 시절 동기들 중 또래들이 모여 만든 연구회에서 매년 가을 정기총회를 엽니다.

이 모임은 언제나 부부 동반으로 십여 명이 모여 북적이던 자리였는데, 올해는 여러 사정으로 네 명만 참석했습니다.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니 어색함도 있었지만, 덕분에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듯이, 이번 모임도 나름대로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린 시절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자란 이들이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굳이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 바로 친구입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고, 다시금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사를 자주 다녔기에 오래된 친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학교 진학 때는 저를 포함해 열 명 남짓이 같은 학교로 배정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깝게 지낸 친구는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 중에는 초등학교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중학교 친구는 단 한 명뿐입니다.

몇 해 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로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제 책을 읽고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연락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연락을 이어가면서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다른 친구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로 5분 거리,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해 만났더니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만나 옛날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만의 특별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분이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한 동네에서 쭉 함께한 친구들도 있고, 저처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제 만났다가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사라지는 것, 이것이 친구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에서도 50년, 60년 만에 만난 친구와도 금세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친구’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친구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두 영혼이 하나의 몸에 깃든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정은 개인의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고, 친구와의 관계는 사랑, 정의, 선의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친구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쾌락에 근거한 우정, 둘째는 이익에 근거한 우정, 셋째는 선의에 근거한 우정입니다.

 쾌락에 근거한 우정은 함께 있을 때 즐겁기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이고, 이익에 근거한 우정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의에 근거한 우정은 상대방의 인격과 덕을 존중하고,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는 관계입니다.

쾌락에 근거한 우정은 함께 있으면 편하고 즐겁지만 즐거움이 사라지면 관계가 끝납니다. 이익에 근거한 우정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는 관계가 좋지만, 이익이 사라지면 관계가 끝납니다.

 선의에 근거한 우정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선함을 사랑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가 유지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의에 근거한 우정을 가장 고귀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을 떠올리면, 저와 친구들 사이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대학원 연구회 친구들과의 모임은 단순히 즐겁기 때문에, 혹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쌓인 신뢰와 서로에 대한 존중, 그리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몇 년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친구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아무런 가식이나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선의에 근거한 우정’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에 따르면, 진정한 친구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깁니다. 실제로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겪는 어려움이나 기쁨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됩니다.

동양에서도 친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는 ‘삼우(三友)’라 하여 “정직한 친구, 신의 있는 친구, 박식한 친구가 있으면 이롭고, 아첨하는 친구, 두 얼굴의 친구, 말만 번지르르한 친구가 있으면 해롭다”고 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습니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을 생각하다 보면, 친구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비추어주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때로는 친구의 조언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친구의 격려가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낍니다. 젊을 때는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점점 멀어집니다. 일과 가정, 책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만남이 줄어들지만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요즘, 문득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존재, 바로 친구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인생이 달라져도 친구와의 우정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만난 친구와의 짧은 만남도 인생의 긴 여정에서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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