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이 끝나면 아버지는 항상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습니다. 목욕탕 입구에서 파는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실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이미지=AI제작]
목욕이 끝나면 아버지는 항상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습니다. 목욕탕 입구에서 파는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실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이미지=AI제작]

[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긴 연휴의 끝자락, 목욕탕에 갔습니다.

몸이 조금 고단하긴 했지만, 뜨거운 온탕에 몸을 담그고 냉탕에서 숨을 돌리며 찜질을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목욕탕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는 장소였습니다.

사실 ‘목욕’은 아주 오래된 문화입니다. 고대 로마에는 ‘테르마에’라는 공중목욕탕이 있었는데, 그곳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온천 문화나 우리나라의 찜질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목욕은 단순히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사람들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특별한 의식이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목욕탕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도 있었고, 조금 멀지만 넓어서 가족들이 자주 찾던 곳도 있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꼭 저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습니다. 그 시절 명절이 다가오는 휴일이면, 집집마다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는 것이 하나의 전통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하는게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때를 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린 마음에는 때를 미는게 조금 힘들었지만, 아버지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즐거웠습니다.

목욕이 끝나면 아버지는 항상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습니다. 목욕탕 입구에서 파는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실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바나나 우유를 먹기 위해 목욕을 참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건네주는 그 작은 우유 하나에 담긴 사랑과 온기는 어린 저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온탕, 시원한 냉탕, 그리고 구석구석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엔 그 모든 소리가 마치 하나의 합창처럼 들렸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늘 묵묵하셨습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때를 미는 손길은 따뜻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온탕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느껴지던 아버지의 존재감은 어린 저에게 든든한 보호자 그 자체였습니다. 목욕이 끝난 뒤 아버지가 제 머리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시던 그 순간은, 세상 누구보다 저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목욕탕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드뭅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익숙해졌습니다. 저 역시 혼자 목욕을 하며, 예전의 소란스러움이 그리워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목욕탕 특유의 온기와 평온함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목욕탕을 나서며 바나나 우유를 손에 들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그 작은 음료수를 마시며 느껴지는 달콤함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가족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특별 한 상징입니다.

 목욕탕에서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성장과 가족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명절 전날의 목욕, 바나나 우유를 나눠 마시던 순간, 그리고 제가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한 목욕탕 나들이. 그 모든 순간들이 제 삶을 지탱 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목욕탕에 가면, 어릴 적 제가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아이들도 느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목욕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바나나 우유를 건네주면서 아버지가 저에게 해줬던 일들을 이야기해줬습니다.

 또한 그 순간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짧은 순 간에 가족의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점점 성장했습니다. 함께 목욕탕에 갈 일이 줄어들고,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목욕이 끝난 후에 바나나 우유를 먹을 것이고, 바나나 우유의 달콤함 속에 담긴 가족의 추억이 언젠가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라고요. 목욕탕은 저에게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닙니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세대가 이어지는 순간을 경험했던 곳입니다. 바나나 우유 한 병에 담긴 추억은 오늘도 제 마음을 울립니다. 앞으로도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연휴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목욕탕에서 느낀 온기와 바나나 우유의 달콤함을 마음에 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이 소중한 기억을 이어가길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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