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가 오늘도 우리를 이어주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밥 한 끼가 오늘도 우리를 이어주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배태훈 다함께연구소장] 아들들이 어릴 때, 우리 집의 밥상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아침과 저녁은 늘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고, 점심은 각자 학교와 직장에서 해결했지만 쉬는 날에는 삼시세끼를 같이 먹었습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학원, 친구들과의 약속, 아르바이트 등 각자의 스케줄이 생기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주 가끔 네 식구가 모여 밥을 먹을 때면, 저는 물론 아내 역시 그 순간을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꼭 이런 말을 합니다. “다 같이 밥을 먹으니까, 정말 좋다.” ‘식구’라는 단어는 밥 식(食), 입 구(口)를 사용하여 한 집에서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히 밥을 먹는 사람을 넘어, 함께 살아가며 정을 나누는 관계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또한 식구는 가족을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조직에서 오래 함께 일하며 정을 나눈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부를 때도 사용됩니다. 언제부터 식구라는 말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솥밥을 먹던 시절부터 그 감각은 존재했을 것입니다.

 함께 불을 피우고, 솥을 올려 곡식을 씻어 밥을 짓고, 그 밥을 나누며 사람들은 이미 서로를 식구라 느꼈을 것입니다.

 식구라는 말에는 단순한 인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숨결과 온기를 나누는 관계,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과 책임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을 함께 먹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밥 한 끼 먹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식사 제안을 넘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밥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함께 식사해요. 숟가락 하나 얻으면 됩니다.” 이 말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객의 자리에서 식구의 자리로 초대하는 말 입니다.

밥 한 끼를 함께 나누며 보다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순간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 는 것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밥 한 끼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친척은 물론 동네 사람들, 지 나가는 나그네에게도 밥을 내놓았습니다.

밥 한 끼를 대접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했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 온기가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오면서 밥상은 점점 해체되고 있습니다. 출근과 퇴근 시간이 길어지고,학원과 업무가 밥시간을 잠식하며, 혼자 밥을 먹는 풍경이 익숙해졌습니다.

1인용 식사 키트와 배달음식이 늘어나면서,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인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혼밥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각자의 삶이 분리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개인화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편리함은 분명 시대의 선물이지만, 그 편리함이 식구의 온기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밥은 단순히 열량을 채우는 음식이 아닙니다. 밥은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 마음의 기록입니다. 밥을 함께 나누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정을 나누고, 관계를 이어갑니다.

저의 부모님은 김포에서 생활하시는데, 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찾아 뵙고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부모님은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십니다. 어머니는 전 날부터 어떤 음식을 준비할지 고민하시고, 평소에 먹던 반찬이라도 조금 더 정성을 담으려 하십니다.

아버지는 건강 이야기를 먼저 꺼내시고, 밥을 먹으며 날씨, 농사, 옛 이야기를 두서없이 섞어 말씀하십니다. 그 시간은 마치 헐거워진 관계의 실을 다시 꿰매는 작업처럼 느껴집니다.

밥 한 끼를 함께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조정하며 관계를 이어갑니다.

밥은 기다림의 음식입니다. 씨앗을 뿌리고, 자라나기를 기다리고, 벼를 수확하고, 도정을 거쳐,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불을 조절하며 뜸을 들이는 과정까지.

그 기다림의 결실이 밥 한 공기에 담깁니다. 밥을 함께 나누는 일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입니다. 식구와의 밥상은 삶의 온기를 지키는 작은 의식입니다.

저는 가끔 아들들에게 먼저 제안합니 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시간 괜찮니?”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오면 그날 하루 마음이 가볍습니다.

아내는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국을 끓이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눈인사를 나눕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넵니다. “어서 와라, 우리 식구들아.”

밥은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생명을 나누는 일은 곧 이야기를 잇는 일입니다.

밥 한 끼가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관계를 살리며, 한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식구라는 말은 우리 가 지켜야 할 말입니다.

밥과 함께 쌓인 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 온기를 잃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밥상을 차리고, 함께 먹어야 합니다.

오늘 저녁, 저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것입니다. 이번 주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실제로 찾아뵈어 밥을 함께 먹을 것입니다. 그 밥상에서 저는 다시 다짐할 것입니다. 식구라는 말의 무게를 잊지 않겠다고. 우리 모두 식구의 온기를 지키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밥 한 끼가 오늘도 우리를 이어주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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