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2002년은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로 양국 간의 협력적 분위기가 좋던 시기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부임한 직원은 공관 내에서 또는 일본 지자체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현지 언어와 사회를 배웠다.
이때 읽어 본 신문기사 중 하나에서 일본인의 독특한 면모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첫인상으로 남았다.
일본은 한자를 읽는 독음(讀音) 방법이 다양하다. 오사카 근처의 항구 도시 ‘神戸’는 ‘고베(こうべ)’로 발음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지역의 도시 ‘神戸’는 전혀 다른 발음으로 읽는다. 사람의 이름 역시 같은 한자(漢字)라도 다르게 읽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본인이 개인적으로 만든 독음이 있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어떤 부모가 출생한 아들의 이름을 ‘나이토’로 지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한자 독음으로 ‘나이토’에 해당하는 글자가 있겠거니 했으나, 실제로는 영어 단어 Knight(기사, 騎士)였다. 영어 발음 ‘나이트’를 독음으로 만들어 작명(作名)한 것이다. 창의성의 극치로 보이면서도 경탄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던 일이다.
이는 보수성과 진취성이 동시에 내재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실례(實例)라고 생각했다.
일본(日本)을 ‘니혼(にほん)’ 또는 ‘닛폰(にっぽん)’으로 읽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하나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른 하나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경우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일본도(日本刀)는 ‘니혼토’보다는 ‘닛폰토’로 읽어 강렬함을 준다.
일본에서 근무를 처음 시작할 때 선임자로부터 들은 조언 중 하나는, 일본에서는 첫인상이나 느낌으로 사람이나 일을 속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허름하거나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상당한 능력자인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종종 반전을 볼 수 있는 나라였다. 사무라이(侍) 결투에서 침묵 중에 돌연 칼을 뽑는 것이나, 멈춰 있던 스모 선수가 격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얌전한 주인공이 갑자기 장난꾸러기 표정으로 바뀌는 장면과도 같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누군가가 자만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이 조용히 주목의 대상이 된다.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사회이기에 금기시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유단(ゆだん, 油断)’이라 하는 지레짐작이나 방심은 특히 경계의 대상이며, “유단하면 다친다(油断はけがのもと)”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
